큐브는 명작이 되진 못해도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이었다.
특히-이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는데-장르에 비해 혹평이 드물었다.
첫씬이 '채썰기'같이 과격한 장면이었고 시종일관 큐브라는 밀폐된 장소안에서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촉촉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 처럼 불만은 적었다.
이것은 큐브가 다양한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킬 요소와 퀄리티를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속편인 하이퍼 큐브는 큐브에 이것저것 다 갖다 붙이다 보니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망하는 속편의 교과서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작품인 큐브 제로는 앞선 두작품과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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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바보짓이였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큐브의 흑인 경찰과 큐브 제로의 흑인군인이다.

이 둘은 후반부에서 다른 캐릭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자로 변모하게 되는데.

흑인 경찰의 경우 그것은 캐릭터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마초적인 성격이 환경에 의해 극대화된 것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욕구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기에 현실적이고 그렇기에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존재다.

그리고 경찰이었다는 설정은 그의 그런 성향에 대해 합리성을 들려준다.
법과 정의의 편이라는 국가가 내려준 보장을 믿고 살아왔던 나날이 그를 큐브내에선 누구보다 독선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흑인 군인은 정부가 심어둔 칩에 의해 살인기계로 변하면서
눈에서 녹색광선이 나오고
뿅~하고 뛰어오른다.
그의 체내에 있는 칩이 통증을 없애고 근육 강화를 시켜주지만 그런것 하나 없는 흑인 경찰이 훨씬 무섭다.

눈에서 레이저 나간다고 무서우면 디지캐럿이 호러물이냐!!!

큐브 제로의 선택이 실수인 이유는 그 선택이 큐브를 죽였기 때문이다.
-큐브-에서 가장 인상깊은 존재는 흑인 군인이나 설계자, 바보가 아니었다.
온갖 잔혹한 부비트랩을 내포한 살인 미로-큐브였다.
대체 무얼 생각하는지 알수 없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그게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오직 자신의 룰에 벗어나는 인간에게 끔찍한 죽음을 내리는.
큐브는 멋진 호러 캐릭터였다.
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창조자인 설계자까지 자신의 제물로 삼으면서 사악한 의지를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큐브 제로에서 큐브는 더이상 -존재-가 아니다.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도구를 다루는 것은 생긴 것부터가 -비정상-마크를 달고 있는 정부 요원......
그런게 무서울리 없지 않나!

물론 큐브 제로의 감독 역시 그 정도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공포를 포기한 대신 정치 풍자를 손에 넣었다고.
그러나 다시 말하지면 이것은 실수이다.
왜냐하면-

큐브의 풍자는 형편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뽑은 사람이 대표자이고
우리가 거기에서 일하고
결국 '우리'의 모습중 하나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저 안드로메다 성운 너머에 눈4개 달린 생물이 살건 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런 피해망상적 음모론은 정부를 완전한 타자로 몰아붙인다.
-이교도or광신도는 갓난아기를 산제물로 바치는 미친놈들-이런 소리와 같은 부류이다.
감독은 1984가 명작인 것이 빅브라더 욕을 써놔서라고 생각한걸까?


그런 것을 얻으려고 죽여버린 -큐브-는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였던가.
숱한 하우스물중이나 기타 다른 장르의 호러물에서도 이런 캐릭터가 또 있었던가.

큐브-제로-는 흔하고 별볼일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유니크하고 귀한 것을 버린 실수를 저질렀다.

/2005에 썼던 영화 비평.
아닌게 아니라 제로가 큐브의 마지막편이 된 듯하다.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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