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군은 대학 졸업후 취직을 하면서 직장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이 도착하기 전날, B군은 새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대로 도착한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방을 구하던 때에 부동산 직원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살던 사람의 짐이 다 빠져나간 상태의 텅빈 방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쪽 벽은 책장을 놓을거니 이사갈때나 되야 다시 보겠구나-같은 생각을 하며 이곳 저곳을 살피던 B군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벽에 붙어있었던 것은 한장의 A4지로, 손글씨로 큼지막하게

 

-발이 생기면 걷습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분명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긴 메모일 것이다.

 

그런데 발을 치지 말라-고 했으면 창문에 발을 치지 말라는 이야기였겠지만 발이 생기면 걷는다라?

 

그럼 사람의 발을 말하는걸텐데 발이 다쳤다가 낫는 것도 아니고 생긴다고?

 

B군은 메모의 내용을 도통 이해를 할수 없었고, 그래서 A4지를 구겨버리고 이 일을 머리 구석으로 치워놓았다.

 

이사이후 짐 정리, 가구배치,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등등 바쁜 하루들이 흘러갔기에 더욱 이 일을 떠올릴 일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새로운 집과 거리에 익숙해져 갈때,

 

집에 귀가하던 B군은 문옆에 검은 얼룩이 생긴걸 발견했다.

 

눈높이 쯤에 주먹크기의 거뭇거뭇한 얼룩.

 

누가 뭐 숯뭉치라도 옮기다 묻혔나, B군은 의아했지만 딱히 아파트 벽면의 미관까지 신경쓰지 않으니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얼룩은 시간지나면 사라지거나 아파트 청소부가 지우거니 하고.

 

그런데 몇일후, B군은 얼룩이 사라지긴 커녕 처음 발견했을때보다 확실히 커져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주먹크기라고 생각했던 얼룩은 아래쪽으로 자라나 있었다.

 

그때부터 B군은 얼룩을 진지하게 살폈고, 그 결과 거의 매일 얼룩이 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누군가 일부러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해 잡아보려도 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어느날 저녁 B군은 도저히 무시할수 없는 크기가 된 얼룩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원인이 무엇인가? 장난이 아니라면 혹시 이 위치에서 무슨 연기라도 새어나오는 것인가?

 

아파트 경비실에 연락이라도 해볼까?

 

그런데 이 얼룩 멀리서 보면 꼭 여자 같이.....

 

B군은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얼룩의 제일 윗부분은 머리를 기른 여성의 머리형태와 닮았으며 아래서 갑자기 좌우로 넓어지는 폭은 사람의 어깨,

 

아래로 내려가며 살짝 벌어지는 곡선은 팔을 포함한 사람의 상체.

 

다시 폭이 좁아지는 것은 아마 스커트를 입은 하체의 실루엣일 것이다.

 

거기서 얼룩은 끝나고 아직 다리 부분은 생기지 않았다.

 

이것을 눈치챈 순간, B군의 머리속에서, 마치 경종이 울리듯 하나의 문구가 되살아 났다.

 

-발이 생기면 걷습니다-

 

피가 싸늘히 식는 깨달음.

 

B군은 집으로 뛰어들어가 바가지에 물을 푸고 휴지와 스폰지, 세제를 들고 다시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 검은 얼룩을 벅벅 문질러 지워냈다.

 

 

그후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벽면에는 다시 검은 얼룩이 생겨났다.

 

그리고 B군은 그때마다 얼룩을 지워서 결코 발이 생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B군은 그 집에서 2년동안 생활한후 전임자가 남긴 것과 똑같은 메모를 남기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후로도 가끔식 -그때 눈치채지 못하고 발까지 생기도록 방치했다면 과연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고 생각하며 그때마다 소름돋는 B군이었다.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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