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가?

마사는 느긋하게, 그러나 많은 것을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

오늘은 그 생각중의 하나이며 다른 곳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간디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도록 하지!

 

인도에 여행간 한국인 중, 흰두 수행자들에게 매혹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는 광경이 있다.

첨단 it 업체가 들어서있는 고층 건물에서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나무 기둥과 판자 몇조각으로 지붕을 세운 집들이 늘어서있는 것!

 

 

가로수가 늘어선 길 좌우로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저택들이 있는데,

맞은 편 빈민가에는 수도도 전기도 화장실도 아무것도 없다.

한 나라안에서 빈부격차가 있는 것이야 어느 나라든 이상하지 않은 광경이고.

급격한 경제발달을 이룬 나라일수록 그 격차도 심해지기 마련이지만

길 하나를 차이로 이런 엄청난 격차가 나는 곳이 인도외에 또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카스트 제도와의 합작품이기에.

 

카스트 제도는 그 자체가 고유명사로 통용되는 유명한 계급제도로서.

종교적 계급제도답게 현세의 차별과 불공평을 신의 뜻과 업보로서 긍정한다.

사람의 신분은 전생의 업보에 의해 정해지므로, 생전에 그걸 바꾸려 시도하는 것은 불경한 일 이며.

자신의 신분에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여 내세의 신분 상승을 바래야하며 이것은 신이 정한 일이라는 카스트 제도.

따라서 카스트 제도의 영향이 살아있는 곳에선 사회를 공평하게 만드려하는 움직임이 그만큼 억눌릴수 밖에 없다.

 

물론 지금 인도는 만민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공식적으론 카스트 제도는 사라진 과거의 존재이다.

그러나 결국은 세속사상이었던 유교의 신분제가 문화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과는 달리,

피안을 바라보았던 흰두교의 카스트 제도는 살아남아서 지금도 인도사회에서 살아있다.

그리고 그것에 책임을 가진 사람중에 비폭력 운동의 성자, 간디 가 있다.

간디를 식민제국 영국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이끈 성자로만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에겐 영국에 대한 독립운동과 마찬가지로 카스트 제도를 수호하는 것이 중요했던거이지.

사실 간디의 내면에서 둘은 인도인의 신성한 고유의 삶, 자티 시스템을 수호하다는 점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그것을 간디의 육성과 함께 살펴보도록 합세~

 

"나는 우리 사상의 가장 근본이 악마의 피조물인 서양 문명에 의해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당연히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당연히 하위 카스트는 상위 카스트에게 봉사하고 차별받아야 한다.

간디는 영국의 착취에 대항해서 목숨을 건 단식을 했고 영국이 가져온 근대 개념에 따라

불가촉천민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항해서도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나는 카스트 제도가 진리라고 믿는다. 바르나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만약 내가 하라잔이라면 내 아들이 왜 청소부가 되면 안 된단 말인가?"

 

간디의 이 발언은 인도가 독립한 1947년에 나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을테니 평등한 권리와 싸운 기간이 더 길었다고 말할수 있다.

간디는 불가촉 천민을 하라잔이라고, 신의 아이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느냐고?

종교인에게 신의 뜻이란 심오한 것!

간디가 자신의 저서중 하나에 써놓은 다음 구절을 보자.

 

"수드라는 종교적 의무로서 오직 상위 카스트를 섬기며 그 어떤 재산도 소유해서는 안된다.

대신 신께서 그들에게 꽃잎을 비처럼 내려주실 것이다."

 

하위 카스트들도 신의 아이들이다.

이 말은 그들이 좋든 싫든 신의 뜻인 카스트제도를 벗어나선 안된다는 무서운 제약.

달리트 운동을 이끌었고 후에 법무부 장관으로서 인도의 헌법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암베드카르 박사는

간디의 이런 모습을 보고 '몇몇놈의 문제가 아니라 힌두교 그 자체가 노답이네.ㅉㅉ' 라고 생각하여 불교로 개종했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불교개종을 권하여 많은 불가촉천민들을 개종시켰다.

사실 간디는 암베드카르 박사가 불가촉천민이란 것을 알고 놀랐는데, 불가촉천민이 높은 지성을 가지고 사회운동을 이끄는걸 불가능하다 여겼던 당시 상위 카스트의 편견을 보여준다 하겠다.

 

"소유하지 않으려는 정신 자세를 수립해야한다."

 

이 고매한 발언조차 내막을 알면 다르게 들린다.

간디는 토지 개혁을 반대하고 부자가 노동자, 농민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신탁이론의 신봉자였거든.

그는 영국 지배자들에게 맞섰지만 기본적으로 질서 수호와 기득권을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모순되어 들리지만 사실 간디가 굉장히 이상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현질서를 옹호하는게 아니라 현재로의 변화를 부정하고 차별적인 구질서를 되살리길 원하는 사람으로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라 하겠다.

 

한 예로 4대 성인중 한명으로 뽑히는 공자 또한 그렇다.

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그가 옳게 생각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와해되고 악한 것으로 본 춘추시대의 도래에 맞선

사회개혁, 아니 사회복원론이었다.

질서 복원과 유지를 위해 기득권 계급의 윤리성을 강조하지만, 기득권 자체는 철저히 옹호했으며

변화를 불러온 것은 부정하거나 통제해야할 것으로 봤다.

그래서 매우 도덕적인 이야기 사이에 봉건제도에 기반한 신분, 성차별 발언이 나오고 

아랫것들에게 법을 알려주면 윗사람이 어찌 다스리냐! 는 섬뜩하기까지한 발언이 섞여있다. 

그가 평등을 중시하고 겸애를 외친 묵가의 맹공격을 받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간디는 브라만 계급이 아니면서 정치를 하며 카스트 제도를 주장했다는 모순이 있는데

공자 역시 사실은 귀족이 아니면서 정치하며 주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모순이 있으니 그런 면에서도

둘이 닮았군 그래.

흐음. 공자의 신분 문제는 유가가 주나라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재해석해서 되살리려한 것의 기원이라 보는데 간디의 사상에도 그런 면이 있었을까?

한번 생각해볼만한 일이군.

 

아무튼 간디 역시 사회주의자와 달리트 운동가들에게 맹공격을 받았다.

인도의 국경일인 간디 탄생일에 간디의 차별발언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는 것은 지금도 인도의 대학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다. 간디의 과오는 지금도 살아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순박한, 다시 말해 근대 사상을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던 당시의 인도 대중들에게

그들이 라마신의 화신으로 숭배하던 성자 간디의 카스트 사수가 어느 정도의 울림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인도의 사회개혁에 어느 정도의 지장을 주었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그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공이 평가받은 것 처럼, 그의 카스트 제도 사수의 과도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역사에 행적을 남긴 인물이란 무릇 공도 크고 과도 큰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공에서 과를 빼고 평가해야하는가?

공과 과를 아예 별개로 평가해야하는가?

공과 과를 평가할때 당시의 가치관을 우선할 것인가 현재의 가치관을 중시할 것인가?

단언하기 어렵고 여러 관점이 있으며 아마 그 관점들마다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 사회에 국한된 가치를 넘어서 인류에게 있어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려 노력할 것.

거기미혹이 없으리!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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