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권이 나왔다!!!



뭐 사실은 나온지 한달 정도 되었지만, 요근래 바빠서리.....
우연히 블로그를 갖고 있음을 환기시켜주는 일이 생겨서 쓰고자한걸 쓴다.

우선 아쉬운 점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좋은 이야긴 더 많이 할테니 기다려라.
꼭 짚고 넘어가야할만한 점이 있어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1권부터 계속 지켜봐온 독자로서 우려이기도 하고,
마사 자신도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실감이 드는 우려이다.


작가의 열의가 떨어진 것이 아닌가?!


물론 작품의 바탕이 되는 순조실록 자체가 좀 부실한 편이다.
(이것 자체도 세도 정치의 폐해겠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산군 일기나 단종실록, 그리고 왕자의 난을 다룬 초창기 기록 또한 부실함이 덜하지 않다.
그러나 그때 박시백은 부실한 사료로도 깊고 다양하게 사고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고 제법 뛰어난 해석을 내놓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여타의 만화 조선왕조실록과 선을 긋는 점이 바로 그런 역사를 다루는 자로서의 자의식과 노력 아니던가.
때로는 국사책의 일반적 해석과 정면으로 맞서가면서 까지!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 어린이 열람실이 아니라 일반 열람실 역사칸에 있는 이유가 그것이지.

그에 비해 이번 17권은(16권 또한 그런 문제점이 느껴졌지만 특히) 
여전히 뼈를 파악하는 능력은 뛰어나나 거기에 살을 붙이려는 노력이 부실한게 느껴진다. 
우선 각 장들의 분단이 문제다.
꼭 편년체 구성을 하는게 아니라.
역사라는 것이 원래 사람 사는 기록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입체적이고 상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17권은 세도 정치 장에서만 세도정치 이야기하고 효명세자 장에서만 효명세자를 이야기한다!
독자에게 역사를 실체로서 전하려는 노력을 소흘히한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초창기 권에 비하면 이야기를 좀 뽑아낼수 있는 부분도 건조하게 사실을 나열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서 효명세자와 부왕 순조간의 관계다.
여타의 대리청정건과 이 경우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지 않는가!
이걸로 순조의 '인간적인 모습'을 상당히 많이 드러낼수 있고,
동시에 여타의 건들을 다시 불러와 비교, 대조함으로서 조선시대 왕권과 세자의 위치들을 다시 한번 고찰할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효명세자의 대리청정건은 현대에 와서 '세도정치에 대한 견제'적 면이 많이 부각되었는데, 박시백이 이 견해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한번 짚고 넘어가는게 맞지 않나 싶다.
   
뭐~ 지적은 여기까지로 하고 다음은 칭찬 타임!

우선 디테일의 부족을 말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술하는 내용면에서의 부족을 지적한 것이지 그 분량내에서 만평으로 잔뼈굵은 박시백의 역량은 뛰어나게 세부를 살렸다!  

세도정치를 부른자, 김조순을 다룬 장의 마지막 컷을 보라!


고개를 숙인 아래 옆으로 돌아가 정면을 바라보는 눈은 비웃는듯하며
수염이 가리고 있지만 얇고 날카로운 턱선.
입가는 표정관리를 해서 웃는듯 마는듯 미묘하게 올라가 있다.

이야 말로 박시백이 본 김조순의 초상,
자신과 일가의 더 큰 권력을 위해 군자라는 탈을 뒤집어쓴 교활한 남자의 초상이다.

사료를 해석하고 역사를 파악하는 지성과 그것을 이미지로 전달하는 역량을 다 볼수 있다.
그렇다.
이번 권 역시 사료의 해석이라는 역사저술의 본분을 볼때,
해석한 부분이 적다는 아쉬움이 있을뿐, 해석 자체는 여전히 뛰어나다.

다시 말하거니와, 조선왕조실록을 쓴 사관은 전원이 성리학을 절대적 가치로 믿은 사대부 계층이다.
당연히 유교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 이것은 단종실록에서 처럼 특정 세력을 옹호하거나 깍아내리려는 의도보다 더 만연해있으며 걸러내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사람 자체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것이니 말이다.
그럼 여기서 그 점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조선을 다룬 현대의 사극들이 그 수많은 사료들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역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고 보는 점이 바로 유교에 대한 이해와 의식의 부족이다.

성리학은 유학의 한갈래로 원래 이학이라 불렸으며 주자가 창설했기에 주자학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 앞에 '성'자를 붙인 것이 바로 성리학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유교에는 성리학만 있는게 아니다.
양명학을 비롯해 여러 갈래가 있으며 사실 조선 건국시에도 성리학 하나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물론 양명학은 명나라때 나온거니 고려말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학 앞에 성자를 붙여 절대화하고 이를 국가의 지배 이념으로 삼은 것은 이학이 다른 유학의 계파보다 사대부가 보기에 좋은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주자학은 다른 유학에 비해 '구별'을 중시한다.
위와 아래,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인간과 금수를 철저히 구분했고 그 구분을 이기설을 이용해 정당화했다.
예학의 발달 또한 그런 이치로 일어난 것이다.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이 동등해서 윗사람 아랫사람이 없다면 복잡한 예법이나 높임말 같은 것은 왜 필요하겠는가?

뭐 간단히 말해서 주자학은 차별을 정당화했다.
그러니-

힘을 가진 자들의 마음에 들수 밖에.
조선처럼 절대화는 아닐 지언정 중국도 일본도 양명학 탄생 이후로도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중시한 이유가 그것이다.
한편 차별이 존재하면 그 희생자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사료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피해자들이 여럿 존재하는데,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파벌이 그리했고,
무엇보다 여성들이 여기서도 최대 피해자다.
심지어 인간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가 지배이념인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얼마나 여론이나 사상, 가치판단이 남성중심적이고 여성 차별적인가?
그냥 뭐 인터넷만 돌아다녀도 간단히 알 일이지.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
그런데 지배이념이 그것을 정당화 시켜주는 조선시대야 오죽 했겠는가?

이것이 조선왕조실록에선 여성으로 권력을 잡은 대비들이 피를 보게 된다.
박시백은 작품 전반에 걸쳐 대비들의 신원회복을 꾀했고 이는 애초의 편중성으로 인해 공정함이 된다.

저울이 기울어졌으면 그 결과를 비뚤게 보는 것이 진짜 공정이고 중용이지!

더욱이 정순대비(왕후)는 정조가 영웅화됨에따라 악의 원흉, 사악 교활한 악녀로 그려졌는데,
박시백은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사료 자체를 기반으로
정순왕후를 있는 그대로,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은 권력자이자 명분을 중시한 사람으로 재평가했다.
그리하여 정조, 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평가되는 정책도 성리학 사회인 조선의 권력자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평가되며.
공노비 해방같이 [정조 영웅 정순 악녀] 라는 프레임에 어긋나기에 무시되기 일수였던 공덕도 수면상으로 올라와 공정하게 평가받는다.
자기 일가족의 신원을 꾀한 것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여겨진다.
뭐 따지고 보면 정조는 자기 아버지 신원 안꾀했냐 말이지.
불세출의 인물인 정약용을 사학 탄압때 같이 유배보낸 것도 후세의 사람이니까 까는 거지
당대 사대부는 한때 발을 담궜던 인물도 용서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벽파는 2년만에 실각하면 3년째엔 주요 구성원들이 죽고 유배가며 역적 낙인이 찍혔다.
그런데도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난 것은 그로부터 15년도 더 지나서 였으니
이는 정순왕후 한사람의 잘못이라 할 일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유교 질서에 대한 객관적이자 비판적인 시선의 극치는 이번 17권에서 별도의 장으로 승화된다.
바로 이여절의 나라라는 장이다.
수십명의 백성을 때려죽이고 갈취하는 살인마 탐관오리가,
기껏 유배로 형벌이 끝난대다가 그나마도 오래잖아 사면!
게다가 이것이 한때 잘못하고 벌받아서 뉘우친 것이 아니라 또 같은 죄를 짓고도
결국은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에 까지 올랐다는 기막힌 사실!
(정약용이 '한때' 천주교를 믿었었다고 18년이 넘게 유배생활을 한걸 생각해보라)

이런 사실들을 드러내면서 조선 사회 전반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을 한다.
물론 대놓고 '유교 나빠염' 이런 말을 한것은 아니지만 지배이념으로서 성리학의 문제와 성리학 사회인 조선의 한계, 병폐를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파헤친 것이다.
강자를 정당화 시켜주는 이념이란 결국 강자를 가해자가 되도록 부추키는 이념이란 것을!

이런 의식들이 있기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조선왕조실록 만화판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역사서로서 가치를 가지며 (넘치도록 충분히!)
더 나아가 다음 권에의 기대또한 갖게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조선은 일제에 침탈당해 식민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말기에 대해선 조선 전기, 중기처럼 객관적인 분석이며 정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종만해도 나라를 빼앗긴 못난 군주와 열심히 해보려했으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은 비극의 군주 사이에서 애매모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명성 왕후는 시해당했다는 것 때문에 생전의 정치활동들이 조선에게 이로웠는지 해로웠는지 하는 식의 해석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흥선대원군과 고종을 별개의 권으로 다루기로 한 작가가 여기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줄거라 믿으며-
다만 디테일의 보강을 좀 주문하는 바이다!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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