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역사 연구를 하는 교수가 겪은 이야기다.

한국에서 발해를 연구함에 있어서 곤란한 점은,

그 영토의 위치 때문에 대한민국 내에서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에 갈수는 없으니 중국을 통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교수 역시 젊은 시절부터 중국을 여러차례 오갔으며 지금은 중국인과 의사소통 정도를 넘어 전문적인 이야기까지도 어렵지 않게 나눌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차례 중국을 오가는 사이에 중국사학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엇다.

 

한번은 학계에도 인정받으며 대중적인 인기도 가진 한 중국학자의 집에 초대받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은 골동품은 물론이오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 여럿 있어 역사학자로서 감탄이 나왓다한다.

 

중국과 한국의 고대사등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던 집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교수는 방안의 유물들을 느긋히 둘러보기 시작햇다.

 

그 중 시선이 멈춘것은 사람 머리만한 원반이 들어잇는 유리케이스였다.

 

들여다보니 그 원반은 청동거울이었다.

거울이라고 해도 청동 거울. 세월의 흔적도 있어 아주 흐릿한 상이 맺히는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아랫부분은 긴세월에 마모된 듯 보이는 것도 없고 교수의 얼굴부분만이 중앙부에 흐릿하게 비추고 잇엇다.

그때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집주인이 당황해서 교수의 손을 잡아끄는게 아닌가.

 

집주인이 말하기를, 저 청동거울은 상나라의 유물인데 가끔 제사에 쓰인 희생양들의 모습이 비춰지는 불길한 물건이라한다.

물론 교수는 '내 얼굴만 흐릿하게 비췃구만 산제물이 보이긴 무슨.'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니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내 얼굴만 비췃다ㅡ고 생각한 그 형상은 다르게 생각해보면,
여러 목 없는 상체 들과 단 한명, 목이 붙어있는 자신이 비춰진 형상일수도 잇던 것이다.

 


상나라는 한때 실존이 의심되었지만 그 시대의 기록인 갑골문이 발견되며 역사로 인정받았다.
거북 등껍질에 새겨진 복점 기록인 갑골문에는 강족 백명의 머리를 베어 바칠까요? 같이 사람을 죽여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기록이 다수 존재한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흥기한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는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인형을 제물로 쓰는것 조차 크게 혐오했다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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