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수가 늘어 그 집단이 국가로 발전하면서, 부정부패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되어 막강한 권력이 태어났고 그 권력을 대행하는 관료들이 생겨났는데,

 

이는 관료가 갖고 있는 권력이 항상 봉급보다 많을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개인의 경제적 관점에선 그 권력을 금전과 바꾸는, 부패 행위가 항상 이득이었고

 

어느 국가든 부정부패는 국력누수를 발생시키는 대표적 사회병폐로 여겼으나

 

이러한 근본적 구조의 문제도 있었기에 근절할 수가 없었다.

 

 

고대부터 문명을 유지해왔던 중국은 오랜 권력사회의 역사가 있다.

 

다시말해, 오랜 부정부패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저 멀리 주나라때부터 이 냄새나는 기록이 남아았으며 현대 중국 역시 피할 수가 없다.

 

한편, 청나라 말기 서태후의 식사를 담당한 선방의 기록을 보면

 

서태후 개인의 하루 식사 준비를 위해 구매 담당 부처에서 사들인 수많은 물품중에 달걀 500개가 있다.

 

그날만 특별히 산게 아니라 매일매일.

 

서태후가 무슨 10미터 짜리 뱀도 아니고 한사람의 노파인데 하루에 달걀 500개라니 말이 되는가!

 

당연히 실제 식사에 쓰이는 달걀은 20개도 안되며 그외의 480개는 이놈 슬쩍 저놈 슬쩍,

 

누가 먹고 몇개를 먹는가까지 법도처럼 부처들 사이에서 정해져있는 것이다.

 

그 몇푼안되는 달걀 하나만 봐도 이런데 다른 물품, 정책 예산들은 어땠겠는가?

 

이렇게 당연시되다 못해 규범화된 부패를 중국에선 누규, 구차한 규칙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부패들은 더이상 잘못이 아니라 전통이자 규범으로 여겨지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아무튼 이런 부패가 청황실이 강산의 주인이던 시절에는 가능했으나

 

혁명이 일어나 중화민국이 세워진 이후 황실우대비를 받아서 생활하던 청황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통제는 한국에도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황제이자 청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는 선방의 지출을 줄이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에는 선방 자체를 없애고 새 주방을 세운다는 극약처방을 내릴수 밖에 없었다.

 

그히라여 함복궁 전전을 허물고 그곳에 새 주방을 세웠는데- 여기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장 안에서 봉인되어 있는 작은 상자가 하나 발견되었던 것이다.

 

열어보니 그 안에선 곱게 접혀있는 피묻은 옷과 신발 한 켤레, 그리고 문서 한 장이 나왔다.

 

선통제는 그 문서를 신중히 읽고는 상자와 문서를 다 불태우라고 명했고 이는 그대로 행해졌다.

 

출입자가 극도로 제한된 궁궐내부에 봉인되어있던 피묻은 물품들. 그리고 말없이 태워버리라한 황제.

 

전말을 목격한 환관에 의해 역사에 남은 이 일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선통제는 그 문서의 내용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원래 마사는 이 -궁궐안에 감춰진 작은 상자의 비밀-을 마사의 괴담의 소제로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태후 하루 식사용으로 달걀만 500개 샀다는 것이 훨씬 괴담스럽잖아!

 

그러니 이렇게 역사에 남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알리는 수 밖에.

 

 

요즘 한국에선 부패방지법으로서 김영란법이 화두인데,

 

김영란법의 내용은 물론 양호하고 한국의 현실에서 필요한 법이다.

 

허나 마사는 그 법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지에는 의문이 있네.

 

어느 시대에나 부패는 처벌대상이었고 '피부를 벗기고 풀로 채우는' 극형까지도 부과되곤 했다.

 

그런데 한국 중국 어느 나라 할거없이 부패가 횡행했던 것은, 너도 하고 나도 하는 당연한 것이라 안 걸릴 거라고 여기기 때문아지.

 

부패방지법의 성패는 부패를 저지르면 반드시 걸려서 처벌받는다는 확신을 공직자에게 심어줘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부패가 이득이 아니라 지위와 봉급을 잃는다는 손해로 여기게 하는 것에 달려있다.

 

그럴려면 우선 4대강을 비롯한 초거대 부패 사건들부터 처리해야 할텐데.....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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