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판타지 문학계의 거물 이영도.
드래곤 라자는 한국 판타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때 1세대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고 그 작가인 이영도 역시 판타지 작가의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뭐 팬 많으면 안티도 있는거고 무수한 좀비를 이끌고 다니는 이영도에겐 적잖은 안티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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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이 공격하는 부분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들이 철학자가 된다'라는 거다.
물론 장르가 판타지건 뭣이건 이야기에 철학이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나는 절대 소설에 철학, 사상같은건 일절 안넣고 섹스,폭력만 가득 채워야지'라는 것도 나름의 철학이고 사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영도 소설에선 종종 철학이 이야기에서 배어나오는게 아니라 캐릭터가 직접말한다.
그것도 그 캐릭터가 철학자거나 생각이 깊으며 분석적 사고를 가졌으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그의 성격, 지성에 비추어보면 알리 없는 이야기를 어딘가로부터 듣고 옮기듯 말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가 독전파를 쏘는게지.

바로 이 부분이 이영도 소설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점이고
그러다보니 이것과 관련된 공방이 인터넷에서 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공방을 보며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의 세도시 이야기다.
주홍빛 베네치아
은빛 피렌체
황금빛 로마

이 3권의 소설에는 그런 '요소'가 더욱 노골적으로 나와있다.

이 책의 세계에선 사람들이 서로 인사나누자마자 원래라면 뻔히 알고 있을 시대상이나 풍습에 대해 아예 세미나를 연다.
'안녕하세요?'
'예. 좋은 아침이군요.'
'지금 이탈리아 정세와는 다르게 말이죠. 사실 베네치아의 입장에서는 카를로스 황제가 쏼라쏼라~'
'황제 입장에서는 투르크가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더라도 쏼라쏼라.'
심지어 처음보는 사람들 끼리도 이런다!

2권에서 피렌체의 노귀족 베트리가 마키아벨리가 실패한 이유에 대한 분석을 할때 그 대상이 동석해있는 주인공 마르코가 아니라 책을 읽는 현대의 독자라는건 금방 알수 있다.
3권에선 몇년만에 만난 사랑하는 여인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첩의 사회적인 위치 강의'를 하는 남자가 나오지 않나.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서로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화면을 쳐다보며 광고문구를 읊는 수준으로 노골적이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를 이 것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그리 보지 못했다.
그리고 있어도 주소 잘못 찾은 비판이지.

왜냐하면 세도시 이야기는 원래 그런 책이니까.
작가 서문에서 부터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도시임-하고 꽝 찍어 버렸으니까!
도시의 정경, 아름다운 풍물, 유행하는 패션, 예술가와 예술품, 당시 국제정세,
본래는 소도구와 배경에 불과해야할 이것들이 주이고.
가상인물인 주인공가 겪는 드라마 자체가 저 '주'와 주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도구다.
보통은 주객전도가 되어야 하는 이 구도가 '이것도 옳다!'고 외치며 멀쩡히 돌아간다.

정말, 시오노 나나미가 인기 있는건 당연하다.
역사가 단순히 자료 나열을 넘어서 재밌는 이야기가 되잖나.
더 나아가 시대차를 넘어서는 근본 원리를 가르쳐주고.
본격적으로 역사학을 파는게 아닌 일반인이라면 역사 카테고리에서 접할수 있는 저작중에
시오노 나나미가 쓴 책들만큼 즐거움을 주는 유익한 책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고 세도시 이야기나 전쟁3부작의 이야기.

이영도의 이야기와는 다르지.
이영도가 서있는 필드는 시오노 나나미가 서있는 필드와 다르고 규칙도 다르다.
판타지는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를 그린다는 점에선 분명 역사소설 이상이다.
그러나 장편 판타지를 사람이 읽는 것은 결국 드라마를 읽는 것이고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캐릭터와 캐릭터. 그리고 그들간의 갈등, 사건, 클라이막스로 쳐올려지는 긴장.
그런 장편 판타지에서 작가가 캐릭터의 입을 억지로 빌려 철학을 말하는 것은 확실히 개연성과 드라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쉽지.
폴랩 마지막권은 작가가 상정한 구도에 캐릭터가 억지로 끌려다니는게 눈에 보였다!
그 외에 논리.철학논고의 소설판인가 싶을 정도의 구절도 보이니.
뭐 시니컬 개똥철학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판타지계에선 일류 자격이 확실한 것은 사실이다만.

그럼 의미에서 마사는 이영도의 판타지에서 sf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었다.
sf에는 스페이스 오페라나 스페이스 마카로니같은 장르도 있지만
사변소설같이 드라마보다 과학적 가정과 다른 세계 자체를 탐구하는데 비중을 두는 장르도 있거든.
이영도의 단편집 오버 더 호라이즌은 특히 그런 성격이 강했다.
(거의 아시모프 단편의 판타지 버젼으로 보이는 것도 하나 있었지.....)

그런 의미에서 월간 판타스틱에 sf를 발표한 최근 이영도의 행보는 한번 주의를 기울려볼 가치가 있다.
Posted by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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